국내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물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 여행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안도 다다오, 이타미 준, 승효상 등 유명 건축가의 철학과 미학이 녹아든 건축물을 중심으로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단순히 멋진 사진을 찍는 것을 넘어 공간이 주는 감성과 철학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 될 것입니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
안도 다다오는 세계 건축계에서 ‘빛의 시인’이라 불리는 건축가로,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며 감성적인 공간 경험을 창출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조형미를 넘어 건축 공간에 존재하는 ‘비물질적 요소’, 즉 빛, 그림자, 공기, 침묵 등을 구조 속에 녹여냅니다. 국내에서 그의 철학을 가장 뚜렷하게 체험할 수 있는 장소는 제주도에 위치한 ‘유민미술관(글라스하우스)’입니다. 이 건축물은 석양이 지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으며, 통유리 외벽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 마치 사용자가 바다와 하늘의 일부가 된 듯한 몰입을 유도합니다. 내부 전시는 최소화되어 있으며, 오히려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시품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안도가 의도한 ‘건축을 통한 내면의 사유’라는 핵심 개념이 반영된 결과로, 관람자는 자연 풍경 속에 자신을 투영하며 정서적 깊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구조적으로는 콘크리트를 기본 재료로 사용하되, 빛의 흐름을 조절하는 개구부의 배치와 유리의 반사율까지 철저하게 계산되어 공간 전체가 하나의 움직이는 작품처럼 기능합니다. 대표적인 감상포인트는 ‘빛의 흐름과 반사’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하루 중 시간대에 따라 내부에 투과되는 빛이 달라지며, 그것이 벽면과 바닥, 천장에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관람자에게 시간의 흐름까지 인지하게 만듭니다. 또 다른 안도의 대표작은 본태박물관에 이어지는 ‘지니어스 루사이’입니다. 이 공간은 미술관, 숙소, 전시관을 포함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제주 화산석의 거칠고 중후한 질감 위에 안도의 미니멀리즘이 결합되어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곳은 특히 안도의 ‘내면으로의 통로’라는 주제를 건축적으로 표현한 사례로 평가받으며, 건물 외부에서부터 점차 어두워지는 실내를 따라 걷다 보면 마지막에 맞이하는 작은 채광창으로부터 비추는 한 줄기 빛이 극적인 감정을 자극합니다. 감상포인트는 ‘걷는 동선’입니다. 단순한 관람이 아닌, 공간을 직접 이동하면서 변화하는 온도, 소리, 빛의 상태를 체험함으로써 건축이 단순한 시각예술이 아닌 종합적인 감각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안도 다다오의 국내 건축물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수필이자 시이며, 관람자는 그 공간 안에서 ‘자기성찰’이라는 문장을 완성해 나가는 주인공이 됩니다.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이 담긴 여행지
이타미 준은 자연과 인간, 건축 사이의 깊은 관계를 탐구한 건축가로, 그의 작품은 단순한 외형적 아름다움보다 경험과 감성의 층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대표작인 ‘방주교회’는 제주의 중산간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구조와 고요한 수면 위에 반사되는 건축의 윤곽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한라산이 그대로 시야에 들어오며, 마치 자연이 예배당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독특한 공간감이 형성됩니다. 교회의 단순한 콘크리트 외관은 내부의 명상적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며, 구조물 자체가 자연과 대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건축계에서는 이타미 준의 건축이 '현대적 선(禪)'을 구현했다고 평가하는데, 이는 물, 돌, 빛이라는 세 가지 자연적 요소를 건축적 장치로 끌어들여 인간이 공간 속에서 고요히 사유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방주교회 외에도 ‘물의 정원’과 ‘바람의 정원’은 각각 수면을 따라 걷는 감각, 바람이 통과하며 흔드는 소리 등 감각적 체험을 유도하며, 건축을 통한 감성 자극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본태박물관 내에 위치한 이타미 준 기념관은 그의 생애와 철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로, 입구에 들어서며 펼쳐지는 중정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빛의 이동을 체험하게 하는 등 감각적으로도 정교하게 설계된 공간입니다. 감상포인트는 단연 '정적 속의 움직임'으로, 고요한 콘크리트와 정제된 자연 요소가 만들어내는 묘한 대비가 관람자에게 깊은 사유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승효상의 건축미학이 살아 숨 쉬는 공간
승효상 건축가는 '빈자의 미학'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기능과 형태보다는 인간의 삶과 공간의 본질을 고민해 온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작인 파주출판도시의 '지혜의 숲'은 단순한 도서관을 넘어서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수직으로 솟은 거대한 책장과 아치형 천장은 인간이 지식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며,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은 마치 시간의 강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천창으로 스며드는 자연광은 하루 중 시간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를 미묘하게 변화시키며, 이러한 빛의 흐름은 책과 공간,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연결을 의도합니다. 건축학적으로 이 공간은 ‘비움의 미학’을 실현한 공간으로, 불필요한 장식을 최소화하면서도 절제된 디테일을 통해 깊은 감동을 유도합니다. 또한 승효상의 또 다른 대표작인 ‘수졸당’은 도심 속에 자리한 조용한 주거 공간으로, 현대 건축에서 보기 드문 ‘한옥의 정신’을 재해석한 사례입니다. 단층 구조에 외부로 향하는 마당,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흐릿하게 설계함으로써 자연과의 공존을 시도하며, 내부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복잡한 동선과 빛의 유입으로 사용자 중심의 섬세한 설계를 보여줍니다. 감상포인트는 공간의 흐름과 정적입니다. 승효상은 관람자가 그 공간을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가장 중시하며, 걸음걸이 하나하나에서 공간이 주는 무게감을 체감하게 만듭니다. 그의 건축은 말 그대로 조용한 울림을 가지며, 단순히 바라보는 공간이 아니라 직접 ‘사는’ 공간임을 느끼게 해주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결론
국내에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손길이 닿은 공간들이 많습니다.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서, 건축물 하나하나에 담긴 철학과 미학을 경험하며 깊이 있는 여행을 떠나보세요. 감성과 지식을 모두 충족시키는 건축 여행은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 줄 것입니다.